역사이야기

TVN '어쩌다 어른' 프로에서 설민석 강사의 장희빈 편 강의를 보고..

patrica1977 2024. 1. 10.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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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직접 작성 + 카카오TV + 조선왕조실록 + 인터넷 검색]

 

설민석 역사 강사가 잘못된 이집트 역사에 대해 전문가에 대한 질타를 받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사실 그전에도 문제가 된 강의는 있었다. 단지 우리나라 사람들의 옅은 역사지식을 바탕으로 재미있게 강의하다 보니 잘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이다.

원래 TV는 잘 안 보는 편인데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2016년 6월 9일 자로 방영된 TVN '어쩌다 어른' 프로그램에서 설민석 강사가 장희빈 편에 대해 방영한 내용을 보고 이건 좀 아니다고 느낀 내용들이 한두 개가 아니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역사 전문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역사학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방송에서 그것도 외국인 방청객이 있는 상황에서 강의할 올바른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설민석 강사는 어쩌다 어른 프로에 여러 차례 역사 강의를 하였지만 본 적이 없었고 내가 시청했던 장희빈 동영상을 시청해 보자.

 

https://tv.kakao.com/channel/2653464/cliplink/300101539

 

위 동영상을 보고 대다수 국민들은 뭐가 문제 되는지 전혀 인지를 못할 것이다.

장희빈은 이미 국민들에게 악녀의 이미지로 단단히 찍힌 여인인 데다, 어떤 악행을 만들어 갖다 붙여도 "그랬을 거야, 그러고도 남지" 식으로 생각하는 국민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알고있는 장희빈에 대한 대다수 악행들은 정사인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는 전혀 기록이 없다. 그럼 우리가 알고 있는 장희빈의 악행들은 어디서 온 기록일까? 바로 수문록이라는 책이다.

 

수문록은 정사가 아닌 야사로 수문록에 대한 내용은 아래 주소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https://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31372

 

수문록(隨聞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마지막 줄에 있는 내용을 보면 "불편부당하게 충역(忠逆)을 구분하여 듣고 본 것을 기록한다고 하였으나 노론 4 대신의 변호에 역점을 두고 있다"라고 기재되어 있다.다시 말해 노론의 입장에서 적었다는 뜻이다.

역사를 공부한 사람들은 대부분 알겠지만 노론은 인현왕후, 숙빈최씨, 영조를 지지하던 세력으로, 장희빈과 경종을 지지하는 소론과는 당파가 다른 어울리고 싶어도 어울리지 못하는 당파였다.

수문록을 지은 이문정 역시 노론세력의 대표 인물로서, 종제 이진유가 김일경과 신축소를 올리자 절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노론 정체성이 강한 인물이었고, 이런 정체성을 수문록이라는 책을 통해 서술함으로써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이런 수문록이 노론입장에 집필하다 보니 정사인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로 일일이 대조해 보면 조작된 것이 티가 너무 날 정도로 의도적으로 장희빈에 대해 흠집을 내거나 깎아내리는 내용들이 대다수이다.

사실 수문록의 내용이 정사인 것처럼 우리나라 국민들의 사고 속에 자리 잡은 이유가 TV사극의 영향이 가장 크다. TV사극은 어느 사극을 막론하고 100% 역사적 사실에 맞춰 방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그래서 2000년대에 들어서는 퓨전 사극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사대로 방영하지 않는 이유는 사극을 만드는 드라마 작가들이 역사학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충분한 역사전문가들을 통한 자문 없이 수문록에 의존한 내용 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 내에서 그대로 방영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며, 수문록에 기록된 대부분의 내용들이 진실여부를 떠나 시청자들에게 흥미와 재미를 주는 '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수문록 내용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내용 두 개만 언급하자면...

1. 숙빈 최씨는 늦은 밤에 인현왕후를 위한 기도를 하다 숙종과 만났다.

실제로 어느 정사에도 숙빈 최 씨와 숙종의 만난 계기에 대해서는 전혀 기록이 없는 오직 수문록에만 기록된 내용이며, 수문록의 내용은 두 사람이 이렇게 운명적으로 만난다는 드라마 소재로 삼기에도 적합하여 많은 사람들이 두 사람의 첫 만남의 계기를 수문록의 내용을 진실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2. 사약을 먹지 않기 위해 발악했고, 아들의 하초를 잡아당겨 고자로 만드는 패악을 부리다 억지로 사약이 부어졌다. 드디어 장녀가 죽으니 하늘의 천벌을 받아 시체가 순식간에 썩어 궐내를 진동하는지라 즉시 궁밖으로 내다 버렸다.

이 내용도 수문록에 기록되어 있는데 설민석 강사가 수문록에 있는 내용을 강의한 부분이다. 상식적으로 이 내용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사람이 죽자마자 시체가 순식간에 썩었다는 것도 말도 안 되고 아무리 죄를 지었다고 해도 왕의 후궁인 데다 왕세자까지 낳은 여인을 내다 버렸다는 표현자체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장희빈에 대한 악감정이 있지 않고는 절대로 이렇게 쓸 수 없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이문정이라는 사람은 정치인이 아닌 소설가로 데뷔했으면 크게 성공했을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장희빈에 죽음에 대해서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을 찾아보았다.

※ 조선왕조실록 한글번역본 사이버 실록 홈페이지

 

http://sillok.history.go.kr/id/ksa_12710008_008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 35권, 숙종 27년 10월 8일 신유 8번째기사 1701년 청 강희(康熙) 40년 희빈 장씨를 내전을 질투하여 모해하려 한 죄로 자진하게 하라고 하교하다

sillok.history.go.kr

http://sillok.history.go.kr/id/ksa_12710008_010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 35권, 숙종 27년 10월 8일 신유 10번째기사 1701년 청 강희(康熙) 40년 부교리 권상유 등이 세자 보안을 위해 장 희빈의 구명을 청했으나 허락하지 않다

sillok.history.go.kr

http://sillok.history.go.kr/id/ksa_12710008_011

 

조선왕조실록

○判中樞府事徐文重、右議政申琓、吏曹判書李畬請對, 上引見。 徐文重曰: "今日之事, 群臣章奏, 竭意陳達, 聖明亦委曲開釋, 無一毫不盡之事, 而猝承備忘, 臣等在大臣之列, 驚惶震剝, 不得不請

sillok.history.go.kr

http://sillok.history.go.kr/id/ksa_12710010_002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 35권, 숙종 27년 10월 10일 계해 2번째기사 1701년 청 강희(康熙) 40년 예조로 하여금 자진한 장 희빈의 상장의 제수를 참작하여 거행하라고 하교하다

sillok.history.go.kr

 

실록 내용을 보면 장희빈을 사사(직접 죽임)할지 자진(자살)할지에 대한 숙종과 대신들의 의견 대립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결국 자진한 것으로 결론이 나서 최소한 우리가 알고 있는 드라마에서 본 격한 장면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약 장면은 서인의 입장에서 적은 수문록이나 인현왕후 전에서 재미를 위해 옮겨온 것이다.

다만, 자진을 하기 위해 어떠한 방법을 사용했는지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데 가장 무난한 방법이 사약을 통한 자진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MBC 드라마 '동이'에서 장희빈 역을 맡았던 배우 이소연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사약을 마시고 조용히 죽는데 아마 실제로 이런 죽음을 맞이했을 가능성이 높다.

설민석 강사의 강의는 대체로 정사가 아닌 야사인 수문록에 의존하여 강의하였고, 더군다나 한국사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외국인들도 방청객으로 있는데 재미를 위해 야사 내용을 진실인 것처럼 강의하는 내용은 개인적으로 매우 아쉬웠다. 차라리 방송에 이런 야사도 있지만 정사에는 없는 내용이라고 보충설명을 했으면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이 방송 이후에 설민석 강사가 발간한 역사도서에는 정사에는 없는 내용이라는 보충 설명이 있었다.

 

숙빈 최씨의 아들인 영조의 경우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자신의 신분 콤플렉스 해소와 어머니 신분 상승을 위해 무난히 많은 노력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문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다 보니 즉위 원년에 세운 소령원(숙빈 최씨의 무덤)의 신도비에 적힌 내용도 조작된 정황과 증거가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내용 2개가 있는데, 숙빈 최씨는 7세에 입궁을 했다는 것과 1716년에 출궁 했다는 것이다.

숙빈은 후궁이 되기 전의 어떤 신분이었는지 아직까지도 어느 역사학사들도 명백하게 밝혀낸 것이 없다. 2009년~2010년 사이에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총 5권으로 구성된 숙빈 최씨자료집을 출판하였는데, 현재까지의 자료 중에서 숙빈 최씨에 대한 많은 자료를 수록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도서에서도 숙빈 최씨의 전직에 대해 명확히 밝혀내지는 못하였다.

가장 많이 알고 있는 것이 무수리설인데, 무수리의 경우 영조가 신분콤플렉스를 느낄 정도의 낮은 신분이라 가장 많이 유력한 설로 보고 있고, 더군다나 수문록에서도 무수리로 기록되어 있다 보니 더더욱 무수리로 알려진 편이지만 100% 확인된 진실은 아니다. 그 외에도 언급된 전직 신분은 각심이설, 궁녀 침방나인설이 있다.

영조가 신도비에 7세 입궁했다고 적은 것은 숙빈 최씨가 궁녀 출신이라고 돌려 말해 간접적으로 자신의 어머니가 궁녀출신이라는 걸 알려주려고 신도비에 적은 것이다. 궁녀가 입궁하는 어린 생각시 시기의 나이가 평균 7살이기 때문이다.

영조와 그의 직계 후손인 고종은 숙빈 최씨가 궁녀 침방나인 출신이라고 주장하였지만, 어디까지나 주장만 하였을 뿐 명확한 근거도 없고 영조도 평생 동안 어머니 신분 콤플렉스에서 시달렸던 것만큼 최씨가 궁녀출신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궁녀 침방나인의 경우 침방나인이 나인 중에서도 두 번째로 높은 서열이라 영조가 콤플렉스를 느낄 정도의 신분이 아니라는 역사학자들의 의견들이 많아 인정을 못 받고 있다. 무수리 신분의 경우 다른 궁녀와는 달리 궁궐 출입이 자유롭고 힘 좋고 요령 있는 성인 여성들 위주로 선발했기 때문에 언제 입궁했다는 기록 자체를 남기지 않고 천한 신분이라 영조가 충분히 콤플렉스를 가질 수 있다는 숙빈의 전직으로 주목되며, 그 외에도 무수리와 동급인 각심이 설도 있다.

두 번째로, 숙빈이 궁궐에서 1716년에 나갔다는 내용인데 이 내용 하나만 보더라도 신도비 기록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숙빈최씨가 궁궐에서 언제 출궁 했는지는 아직까지 역사학자들도 밝혀낸 자료가 없다. 그렇지만 숙종실록에 있는 기록 하나가 모든 것을 증명해주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http://sillok.history.go.kr/id/ksa_13706022_002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 50권, 숙종 37년 6월 22일 경진 2번째기사 1711년 청 강희(康熙) 50년 이현궁을 환수토록 하다.

sillok.history.go.kr

 

숙종실록에 기록된 이 내용을 보면, 숙빈 최씨가 현재 거주 중인 이현궁을 비우고 아들인 연잉군 저택에서 함께 살라고 명한 내용이다. 숙종이 전교를 내린 시기가 1711년 6월 22일이다. 다시 말해서 숙빈은 1711년에 이미 출궁 하였고 그 이후부터는 이현궁에서 거주하다 1711년 6월 22일 자로 숙종의 명으로 연잉군 저택으로 옮겼다. 이런 명백한 기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조는 숙빈의 1716년 이전 출궁 했다는 말에 강력하게 부정만 하였을 뿐 그에 대한 명확한 근거는 제시하지 못하였다.

영조가 신도비에 숙빈이 1716년에 출궁 했다는 기록을 대놓고 적은 이유는 숙종실록에 있는 기록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록청의 내용은 왕이라도 함부로 열람하고 수정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영조가 아버지 숙종실록의 내용을 알 수 없어 이런 오류를 범한 것이었던 것이다. 실록을 기록하는 실록청 사관들은 대체로 고지고대로 있는 사실을 무조건 실록에 기재하는 성향이 있어, 왕의 입장에서 현재 상황이나 내용을 실록에 기록하지 말라는 지시를 어기는 경우가 많아 역대 임금들과 사이가 별로 안 좋았고 사관들의 붓이 두렵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영조가 이렇게까지 했던 이유는 자신이 임금으로서의 정통성과 합리화를 위한 것이었다. 역대 제왕들이 보위에 오르기 위해서는 정통성이 가장 중요했고 그에 따른 신분도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자신과 어머니인 숙빈의 신분에 문제 되는 기록은 없애버리거나 조작할 가능성이 충분하는 것이다. 다만 선왕인 숙종실록에 있는 기록을 없애지 못하다 보니 간단하게 정확한 실록 검증을 통해 진실을 가릴 수 있는 것이다.

참고로,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도 수문록의 내용과 진실에 대해 다룬 적이 있었는데 아래 내용을 참고해 보기 바란다.

 

http://kostma.aks.ac.kr/Contents/Dongyi/Default.aspx?Body=17

 

한국학자료센터

 ■ 숙빈 최씨와 숙종의 인연은 어떻게 맺어졌을까? 조회수 : 206368    드라마 속에서 동이[숙빈 최씨]는 민가를 시찰하던 숙종과 처음으로 만난다. 궁궐 안이 아닌 바깥에서 ‘한성부 판관’과

kostma.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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