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2001년 SBS 사극 '여인천하' 에서 왜곡된 내용들

patrica1977 2024. 8. 10.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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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직접작성]

 

2001년에 SBS에서 방영되었던 대하사극 여인천하에 역사적 왜곡이 많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하나 다시 정리해보겠다,

 

1. 정난정은 도총관 정윤겸의 서녀로 친딸이 정상이다. 사극에서는 파릉군의 비중을 높이기 위해서 파릉군과 정난정을 부녀관계로 설정하였다. 실제로 파릉군의 소생은 1남이 전부이다.

 

2. 파릉군이 정난정 친부로 설정하다 보니 파릉군에 대해 너무 지나치게 충신인 것처럼 설정하였다. 실제로 파릉군은 중종18년에 귀양간 후에 그곳에서 생애를 마치는데 여인천하와는 상당히 대조적인 내용이다.

 

3. 정난정의 나이는 미상이지만 정난정이 실제로 활동한 시기는 명종대이다.

 

4. 윤원로, 윤원형은 문정왕후의 동생이다. 문정왕후의 오빠로 나온 설정은 잘못되었다. 그리고 윤지임은 정실로부터 5남 2녀, 측실로부터 3남을 낳아 총 8남 2녀를 두었다. 

 

5. 치부책 사건이 여러번 나오는데 치부책 사건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모두 허구이다.

 

6. 세자 책봉시 적서구분없이 모든 왕자를 참여시킨 사건 자체는 억지설정이다. 조선시대는 적자와 서자의 차별이 심해 서자는 세자가 될 수 없다.

 

7. 역사적 오류가 가장 심했던 인물은 창빈 안씨인데, 창빈 안씨는 죽을때 까지도 3품인 '소용'에 있었다. 그녀를 정1품 빈으로 추승한 사람은 그녀의 외손자인 선조대왕으로 선조는 왕위에 오른지 10년 후인 1577년에 그녀를 정1품 빈으로 올린다.

 

8. 경빈 박씨는 1527년에 폐서인되고 자순대비는 1531년에 죽고 1533년에는 경빈박씨가 사약을 마시고 죽는다. 따라서 경빈 박씨가 먼저 죽고 자순대비가 나중에 죽은건 잘못되었다.

 

9. 봉성군은 1529년에 태어났다. 경빈 박씨가 1527년에 폐서인이 되어 경상도 상주로 귀양갔으므로 봉성군은 경빈이 폐서인이 되기 전에 나와서는 안되는 인물이다.

 

10. 기생 옥매향은 실존인물이다. 가상인물로 잘못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11. 희빈 홍씨는 아들 봉성군이 연루되자 어머니 병환을 핑계로 스스로 자청해서 나간 것이지 문정왕후가 쫓아낸 것이 아니다.

 

12. 창빈 안씨가 문정왕후 배려로 궐에서 계속 살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창빈이 문정왕후에게 잘 보여서 궐에서 살게 되었다는 설정은 잘못되었다. 실제로 문정왕후는 중종 사후에 모든 후궁들을 계속 궐에서 살게 하였고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이 존재한다. 이때까지 왕비들과는 대조적인 행동이다. 이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문정왕후가 악녀라는 증거는 이미 신빙성이 떨어진다.

 

13. 중종에게 가장 많은 총애를 받았던 후궁은 경빈이 아니라 희빈 홍씨이다. 사극에서는 경빈이 일방적으로 많은 총애를 받은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 증거로 희빈은 가장 많은 자녀(5명,3명은 조졸)을 낳았다.

 

14.  윤원형은 글자에 무식한 인물이 아니었다. 여인천하에 보면 중종에 의해 천거한 것으로 나오는데 실제로 윤원형은 1533년(중종 28) 문과에 급제한다, 그러나 4년 뒤 당시 최고의 권력을 휘두르던 김안로 에게 파직·유배되었다(1537년, 중종 32). 그러나 그 해 김안로가 사사되자 곧 재기해 홍문관 수찬(정5품)·응교(정4품)·교리(정5품), 사헌부 지평(정5품) 등의 청요직을 두루 거친 뒤 좌승지(정3품)·공조참판(종2품) 등의 현직에 올랐다.

 

15. 원래 여인천하 드라마는 50부작으로 제작되었고 8화 정도에 경빈 박씨가 죽은 후에 곧바로 명종시기로 넘어가 배우 박진성을 보우스님역으로 설정 후 문정왕후역인 전인화와 염문을 일으키려는 설정으로 대본을 만들었으나, 경빈 박씨를 연기한 도지원씨의 인기가 높아지자 대본을 변경하여 결국, 보우스님은 마지막 편에 실제 스님으로 단역으로 잠시 출연하는 방향으로 변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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