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직접작성 + KBS 역사스페셜 ]
김개시.. 그녀는 정말 광해군의 연인이었을까? 여러 사극에서 그녀의 일대기를 다루었지만 정작 그녀의 내면의 본모습을 그려내지는 못하였다. 김개시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알아보도록 한다.
역사에 등장하는 조선의 3대 요부에 속하는 김개시라는 인물은 광해군의 총애를 받은 여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장희빈, 장녹수와는 다른 경우의 여인이다.
장희빈, 장녹수와 같이 왕의 권력을 이용하여 덩달아 같이 권력과 부귀영화를 누린 점은 같지만, 이들은 모두 제왕의 후궁들이었다. 그렇지만 김개시 같은 경우는 신분이 정 5품 상궁에 불과했었고, 광해군의 후궁이 아니었고 아버지였던 선조대왕의 승은을 입은 승은상궁이었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연려실기술에는 김개시가 천민 출신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궁녀들의 신분은 천민, 노비출신들이 대부분이었고 이런 신분의 여성들은 오래살라는 의미로 개똥이라는 아명을 붙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김개시 역시 궁에 들어오기 전에는 개똥으로 불렸다가 궁궐에 들어오면서 개시로 불리게 되었다. 개똥을 한자로 풀이한 것이 개시이기 때문에 서로 같은 뜻이다.
김개시는 나인 시절 광해군이 세자로 있던 동궁전 나인으로 배찰되어 근무하여 유년시절의 세자와 같이 지내게 된다.
연려실기술에 의하면 김개시의 정확한 나이는 알 수는 없지만 광해군보다 나이 차이가 많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김개시의 용모 또한 나이가 들어서도 피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김개시는 나이도 광해군보다 많고 외모도 잘난 외모가 아니라 광해군의 총애를 받을 만한 외모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자신의 나이를 이용하여 광해군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는데, 광해군이 3살 때 생모인 공빈 김씨가 요절하는 바람에 어머니의 정을 그리워하던 광해군을 위로해 주면서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비록 광해군보다 신분은 낮은 나인의 신분이었지만 편한 누나로서 지어머니로서의 광해군에게 믿음을 주었다.
그 후 나인 김씨는 대전으로 재임명되어 근무하게 되고 선조의 승은을 입어 정 5품 특별상궁으로 오르게 된다.
당시 광해군은 세자시절이었고, 왕이 되기 위해서는 큰 관문이 필요하였는데, 김개시는 광해군을 위해 선조와 광해군의 사이를 오가면서 부자사이를 좋은 관계로 유지하는데 많은 노력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개시의 처신 덕분인지는 몰라도 여러 불리한 조건을 물리치고 광해군은 조선의 15대 임금으로 즉위하게 된다.
광해군의 재위시절동안 김개시는 상궁의 신분을 이용하여 궁궐으로 수시로 출입하면서 여러 광해군에게 필요한 여러 정치세력과 결탁하면서 광해군의 마당발이 되어주었고 또한 정치적으로 조력자 역할을 하여 광해군의 총애를 얻게 된다. 이렇게 두 사람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협력관계였던 것이고 김개시도 이를 이용하여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게 된다. 나중에는 중전을 능가하여 광해군이 어느 후궁과 침소를 드는 것까지 직접 정해줬다고 한다.
그렇지만 결국 권력 앞에서는 사람도 변한다고 하던가?
김개시도 광해군을 등에 업고 막강한 권력을 누리자 점점 변하기 시작하는데 매관매직을 일삼게 되고, 나중에는 광해군 몰래 당시 조정을 장악했던 대북파의 핵심인물인 이이첨과 결탁하기에 이르게 된다. 이이첨 역시 자신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김개시의 지원이 필요했으므로 김개시의 아버지를 각별히 대했다는 기록도 있다.
더 나아가서는 인조반정의 주력 인물인 김자점에게 뇌물을 받고 그와 결탁하게 된다.
김개시는 궁궐을 들락거리면서 이미 반정의 조짐을 알고 있었고, 이를 막을 수 없었다는 것을 깨달은 김개시는 결국 광해군을 배신하고 김자점에게 뇌물을 받아 반정 후에도 자신의 안위와 권력이 그대로 유지되기를 보장받았다.
광해군이 반정의 조짐이 있다는 상소를 처은 본 것은 1623년 3월 12일 창덕궁 후원에 있는 연못 '애련지'에서 연회가 있을 때였다. 당시 광해군은 술에 취해 바로 확인하지 못하고 나중에 확인하게 된다.
그렇지만 나중에 광해군은 상소를 확인하게 되고 결국 대수롭지 않은 일로 넘겼는데, 바로 이미 김자점과 결탁한 김개시가 대수롭지 않은 상소라고 광해군에게 고했기 때문이다.
[ KBS 역사스페셜 "광해군" 편에서 광해군 일기에 기록된 내용 ]
또 상소에 대해도 조사할 때도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았다.
그 후 광해군은 수많은 상소를 고한 대신들을 무시했고 구체적으로 반정자 이름까지 올라왔는데도 김개시의 말만 믿고 모두 대수롭지 않은 사건으로 넘겨버린다.
반정에 대한 상소는 인조반정 하루 전까지 계속 이어졌지만 광해군은 계속 김개시의 말만 듣고 무시하게 되어 결국 폐위되고 만다.
김개시는 반정을 도운 댓가로 반정 후에도 계속 권력을 누릴 것을 예상했지만 오히려 반정군에 의해 요부로 지목되어 잡혀 결국 처형당하여 파란만장한 인생을 마치게 된다.
★ 참고자료1 - 광해군의 36가지 죄목 ★
인목대비가 광해군에게 전한 36가지 죄목을 KBS역사저널 그날에서 그래프 이미지로 정리하여 올렸습니다.
쉽게 이해되는 그래프라서 참고차 올립니다.
★ 참고자료2 - 인조반정 원인은 광해군 패륜 아닌 북인의 권력 독점 ★
"인조반정 원인은 광해군 패륜 아닌 북인의 권력 독점"
오수창 서울대 교수 "반정 세력 권력욕 비난은 중세적 시각"(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조선에서는 왕을 폐위시키고 새로운 왕을 추대하는 '반정'(反正)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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