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을 실패한 5가지 이유!

patrica1977 2024. 2. 21.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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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직접 작성 + 네이버 뉴스 + MBC TV 서프라이즈]

 

흔히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을 실패한 이유는 추위로 인해 실패했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 다른 이유에 있다고 합니다.

 

모스크바에서 퇴각하는 나폴레옹. (19세기 아돌프 노르텐의 그림)

 

첫 번째로, 날짜 계산을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1812년 전투 병력과 지원 병력을 합쳐 60만이 넘는 병력을 이끌고 러시아로 들어간 나폴레옹이 원정에 실패한 뒤에 12월 3일 발표한 공고문에서 혹독한 추위 때문에 패전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추위가 갑자기 심해져서 11월 14일에서 15일 사이의 밤에는 영하 16도 이상 떨어졌다. 길이 얼음판이 되어 기병, 포병, 보금품을 나르는 말들이 밤마다 무더기로 넘어져 죽었다. 수백이 아니라 수천이 죽어나갔다.'
 
 1812년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을 계획할 당시에는 영국을 고립시키기 위해 대륙봉쇄령이 내려져 있었고 유럽의 어떤 나라도 영국과 무역을 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이 무렵 유럽은 악천후로 농사는 흉작이었고 지루한 전쟁으로 인해 최악의 실업률을 보이고 있었다고 합니다. 유럽의 중심이었던 프랑스는 상황이 더 악화되었는데 기업은 하루가 멀다 하고 도산했고 장기간의 징병과 전쟁으로 국민들의 불만은 극대화되어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이런 극심한 국내 상황을 러시아의 원정으로 만회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주장과는 달리 러시아의 원정 때의 날씨는 평년보다 더 따뜻했었습니다. 최근에 핀란드에서 조사한 당시의 러시아 기후자료를 보면 나폴레옹 원정대가 후퇴하기 시작했던 10월, 키예프의 평균 기온은 영상 10도 이상이었고 바르샤바도 역시 10도가 넘었습니다. 레바르의 경우 6도가 조금 넘어 11월 말에도 강이 전혀 얼지 않았습니다. 땅이 얼지 않아 대포를 이동하는 과정에서 바퀴가 진흙에 빠져 이동에 영향을 주었고, 베레시나 강이 얼지 않았기 때문에 건널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추위 때문이었다는 그의 주장은 왜 그대로 받아들여진 것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시간차 추위 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 추위가 심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한참 뒤의 일입니다. 나폴레옹군이 러시아에서 퇴각하면서 물자손실이 많았던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계획이 잘못되었기 때문이지 추위 탓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진짜 큰 추위는 그해 12월에 몰려옵니다.
 
러시아의 대참패가 있고 한참 지난 후의 일입니다. 그러나 뒤늦게 귀향한 병사들은 그 매서운 추위 이야기를 해서 사람들이 나폴레옹의 변병을 사실처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귀향한 프랑스군의 증언들이 나폴레옹의 공고문의 신빙성을 뒷받침해 주었던 것입니다. 결국 러시아 원정 실패의 속사정은 바로 나폴레옹의 보급 실패에 의한 패배였지, 추위에 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러시아 원정으로 60만 대군 가운데 겨우 4만 명만이 살아서 귀환했고 그 가운데 다시 전투에 나설 수 있을 만큼 온전한 병사는 1천 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참고기사★

 

최근에 네이버 기사 랭킹에 올라온 나폴레옹 군대가 몰살된 자세한 이유가 기재되어 있는데 참고하세요.

기사에서는 러시아에서 "추운 날씨가 온 후인 12월 이후의 상황"을 기록한 것이므로 추위 하나가지고 실패한 것은 아니니 제 글과 기사를 같이 읽어보시면 되겠습니다.

 

http://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001&aid=0007759134&date=20150728&type=1&rankingSectionId=104&rankingSeq=2

 

나폴레옹 군대 몰살 수수께끼 200년만에 풀려

(서울=연합뉴스) 백나리 기자 = 러시아 원정을 떠났다가 리투아니아에서 몰살한 채 유골로 발견됐던 나폴레옹 군대의 수수께끼가 200년 만에 풀렸다. ...

news.naver.com

 

두 번째로, 단추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프랑스 병사들의 아슬아슬한 체온을 가까스로 보호해 주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군복인데 군복상의는 백색의 주석 단추가 부착되었습니다. 당시 프랑스 병사들의 군복은 주석으로 만든 단추로 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12월이 들면서 영하 30도 이하의 맹추위가 계속되자 주석 단추는 진회색 가루가 되어 모두 떨어져 나갔습니다. 병사들은 추위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무기는커녕 군복부터 붙잡고 있어야 했습니다. 전투가 제대로 될 리 만무했습니다. 주석단추가 모두 떨어져 나가자 많은 프랑스 병사들이 추운 날씨에 죽어나갔고 뒤이은 러시아의 추격에 대패를 당하게 됩니다.

 

 

세 번째로, 물자와 식량보급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나폴레옹은 러시아 원정에서 대군을 이끌면서도 작전 수행에 쓰일 식량 등 보급물자를 3주일치만 지급하였습니다. 나머지는 현지조달을 할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평소에도 군대의 진격속도에 신경을 써서 숙영도 노숙을 즐겨했던 나폴레옹이었기에 보급의 현지조달은 당연했던 생각이었지만, 러시아에 청야전술 때문에 계획이 물거품이 됩니다.

 

네 번째로, 러시아의 청야전술 때문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이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로 원정을 떠났을 때 산과 들이 온통 얼어붙는 겨울까지 전쟁을 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러시아 영토 안으로 적당히 진격하면 러시아군 주력이 동원될 수밖에 없을 테니 한판의 결전으로 원정을 마무리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러시아군 기병대가 강하더라도 평야지대에서 벌어지는 전투라면 화력과 훈련된 병력수에서 우세한 프랑스군이 유리할 것이라는 계산이었습니다. 하지만 원정 초반부터 나폴레옹의 계산은 빗나가기 시작합니다. 러시아군의 주력이 전투를 피한 채 내륙 깊숙이 후퇴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모스크바까지 손에 넣었지만 러시아군은 전투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프랑스군은 텅 빈 도시에서 굶어 죽거나 얼어 죽어야 할 판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어쩔 수 없이 병들고 지친 잔존병력을 이끌고 기나긴 후퇴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날만을 기다리며 병력을 보전해 온 러시아 기병대가 패잔병을 곱게 보내줄 리 만무했습니다. 결국 이 무모한 원정을 마치고 러시아 국경을 다시 넘은 프랑스군은 수천 명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이 실패한 이유는 러시아군이 전투를 피하고시간을 벌 때 이에 대응할 대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후퇴하는 러시아군을 쫓자니 긴 보급선이 문제가 되고 그냥 놔두자니 원정을 시작한 명분이 서지 않는 ‘계륵’과 같은 싸움이 러시아원정이었던 것입니다. 반면 러시아군은 시간은 반드시 자신의 편이 될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끈질기게 참으며 기회를 노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섯 번째로, "에메 뒤비크​" 라는 여인 때문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결정에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었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당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아제르바이젠, 예맨 등 광활한 영토를 통치하고 있던 오스만 투르크 제국과 6년 동안 전쟁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러시아가 자신들과의 전쟁에 집중할 수 없을 것이라 판단해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판단은 빗나갑니다. 나폴레옹이 전쟁을 선포하자 바로 오스만제국과 러시아가 휴전협정을 체결한 것입니다. 결국 러시아는 프랑스와의 전쟁에 집중할 수 있었고, 이는 나폴레옹의 패배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러시아와 전쟁에 쉽게 휴전을 체결한 배후에는 당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실세였던 "에메 뒤비크"라는 여인이 있었는데, 이 여인이 러시아와 휴전을 해서 러시아가 프랑스와의 전쟁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게 됩니다. 

 

에메 뒤비크는 오스만 투르크제국의 30대 황제인 마흐무트2세의 어머니이자 나폴레옹의 부인이었던 조세핀의 사촌 언니, 즉 나폴레옹의 처형이 되는 여성입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을 조세핀의 집에서 함께 보냈습니다. 이후 집을 떠나 해외로 가던 중 해적들에게 잡혀 오스만 제국의 하렘으로 들아가게 됩니다. 하렘은 황제의 후궁들이 사는 금남의 구역으로 한번 이곳에 들어온 여자들은 절대 밖으로 나갈 수 없었습니다. 에메 뒤비크는 이곳에서 지내며 압둘 하미트 1세에게 선택받아 아들을 출산하는데 이 아들이 나중에 마흐무트 2세로 오스만 제국의 30대 황제로 등극하게 됩니다. 이에 에메 뒤비크는 최대의 인생역전을 이루며 권력을 휘두르게 됩니다.

 

당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던 조세핀 역시 나폴레옹의 아내였기에, 두 사람은 서로의 권력을 이용해 협력관계를 맺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에서 반란이 일어났을 당시 조세핀의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후 프랑스와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둘도 없는 우애관계를 과시합니다.

 

하지만 조세핀이 아들을 못 낳는다는 이유로 나폴레옹으로부터 버리다시피 이혼을 당하자 에메 뒤비크는 심한 배신감을 가집니다. 특히 조세핀은 나폴레옹과 이혼 후 정부에서 나오는 최소한의 연금으로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에메 뒤비크는 나폴레옹에 대한 복수로 오스만 제국에 있던 친 프랑스 인사들을 모두 내보내고 반 프랑스 인사들을 등용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자국내에 있던 프랑스인들을 구금하기도 합니다.


에메 뒤비크는 이같은 복수의 연장선에서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에 나선다는 말을 듣고, 자신들이 러시아를 정복할 수 있는 황금같은 기회를 포기하고 휴전을 택하여 오히려 러시아가 전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배려했던 것입니다. 

 

반대로 나폴레옹이 조세핀과 이혼을 안했더라면 프랑스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으로부터 식량과 물자조달도 받을 수 있었을 것이고, 러시아는 프랑스-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이중 침략을 견뎌내지 못하고 오히려 망했을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곰곰히 생각해봅니다.  갑자기 이런 명언이 생각나네요. "평상시에 잘해라" "조강지처는 버리지 말아라!

 

[참고자료]

 

MBC TV 서프라이즈 에서도 일화를 드라마화로 제작한 적이 있었습니다. 관련 기사 보세요^^

 

'서프라이즈' 나폴레옹 러시아 원정 실패, 이유는 한 여자 때문? (daum.net)

 

'서프라이즈' 나폴레옹 러시아 원정 실패, 이유는 한 여자 때문?

[TV리포트 장영준 기자] 세기의 영웅이자 위대한 통치자로 칭송받는 나폴레옹은 러시아 원정 패배 이후 몰락의 길을 걸었다. 천하를 손에 넣었던 이 영웅의 최후는 초라했다. 나폴레옹의 비극은

v.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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