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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어머니 2

숙빈 최씨는 왜 왕비가 되지 못했을까?

[출처 : 직접작성 + 조선왕조실록 ] 원래 왕비의 자리가 비어 다음 왕비 자리를 정할 때에는 세 가지 전례대로 왕비를 책봉하였다. 첫 번째로, 전국에 간택령을 내어 처녀 간택을 통하여 왕비를 책봉하였다. 여러 간택 절차를 걸쳐 최종 3 간택까지 이르고 이 3명 중에서 한 명을 왕비로 책봉하였다. 3 간택에서 떨어진 두 명의 처녀는 왕실의 결정 하에 후궁으로 남겨 둘 수도 있었다, 단종대왕의 예가 있는데, 3 간택에서 붙은 정순왕후 송 씨가 왕비가 되고 나머지 두 명의 처녀들은 단종의 후궁이 되었던 전례가 있다. 두 번째로, 후궁 중에서 왕비를 책봉하는 경우가 있는데 후궁에서 왕비가 된 대표적인 여인은 바로 폐비 윤씨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치적인 배경으로 들어온 여인인데, 대표적인 왕비는 문정왕후이다..

역사이야기 2024.01.07

숙종의 후궁 숙빈 최씨의 말년 이야기

[출처 : 직접작성 + 조선왕조실록 ] 사극 "장희빈"에 빠지지 않는 인물이라면 숙빈 최씨는 빠지지 않는 단골 후궁이다. 숙빈 최씨는 무수리 출신의 후궁으로 영조대왕의 생모로 알려져 있고 무수리 출신으로 신데렐라 같은 인생역전을 이룬 인물로 장희빈 사극에는 그녀의 불행한 말년은 잘 암시가 되어 있지 않다. 여러 정사기록을 종합해 본다면 그녀의 행복은 희빈 장씨가 사약을 받기 전까지 인 것으로 보인다. ​ 1701년 10월에 희빈 장씨가 죽은 후 3개월 후인 1702년 1월, 숙종은 희빈 장씨를 지지하고 있었던 소론 출신의 전 영의정 서문중을 영의정으로 임명하였고 다시 소론 대신들을 대거 재등용하여 소론 중심의 정국으로 교체하였는데, 서인이 다시 집권한 갑술환국이 벌어진 지 8년 후였다. ​ 그리고 인현왕..

역사이야기 2024.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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